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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투쟁사

광주학살 진상규명 및 정신계승 투쟁과 관련된 유족회 탄압 일지

1980년
  • 5월 29일망월동 시립공원묘지에 시신 126구를 안장하여 묘지조성 합동위령제 거행.
  • 5월 31일 5·18광주의거 유족회 창립.
1981년
  • 왜 죽은 형제의 추모제까지 탄압받아야 하나

     - 정수만

    정수만씨는 1981년 5월 18일 오전 광주시 망월동 5·18 묘역에서 시민학생 등 500여명이 모인 가운데 5·18광주민중항쟁 1기 추모제를 거행 하던 중, 미국은 광주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가야 한다는 요지의 성명서를 낭독하였으며 시위대와 함께 시내로 진출하려다 체포되어 국가보안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광주교도소에서 복역 후 82년 2월 만기 출소하였다.


1982년

  • 2월 이순자 내광시 4명 연행.
    5·18추모제를 일부 불순세력이 거행한다는 망언을 한 신태호(상공회의소 회장)집 방문시 2차에 걸처 20명이 경찰서, 보안대에 연행됨.
  • 12월 충장로에서 진상규명요구 시위를 하다 광주경찰서에 5명 연행.
    82년 한해 동안 도청, 시청, 터미널 등지에서 구호를 외치다 수차례 걸쳐 수십명 연행.
1983년
  • 3월광주고속 터미널에서 공용터미널로 진상규명을 외치며 행진하던 중 30여명 연행
  • 4월① 전두환 내광시 대전, 현충사 등지로 납치, 또는 연금.
    ② 전남지역개발협의회를 방문, 망월동 묘지이장 저지항의 중 15명 연행(3회).
    7월 : ① 지역개발협의회의 묘지 이장 획책에 대한 성명서 발표로 전계량 회장의 직장과 자택에 관제유족을 동원 테러 자행. ② 도청에서 김창식 도지사 면담 요구하다 30여명 강제연행.
1984년
  • 2월지역개발협의회장 고광표 집 방문 묘지이장 항의하다 4회에 걸쳐 60여명 연행.
  • 4월한신대 초청강연 후 전계량 회장 연행조사.
  • 5월 5·18추모제 거행 후 금남로에서 시위하다 4명 연행
  • 10월 ① 기종도, 박관현 열사 추모집회 참석저지를 위해 회원 6명을 대구·삼척·여수 등지로 납치, 격리.
    ② 진도연육교 준공식에 전두환 방문시 전회원 연금 및 불법납치.
1985년
  • 2월전두환 초도순시 때 시위로 3명 연행.
  • 3월도지사 면담 요청하다 회원 21명 강제 연행되어 전북지방에 2~4킬로미터 간격으로 1~2명씩 유기.
  • 4월 ① 광주공원에서 4?19기념행사 후 도청방향으로 가다 경찰에 강제연행되어 기동대 버스에 10여시간 연금.
    ② 청년부 창립총회 참석하려던 회원 17명을 강제연행, 연행 중 김길자씨를 경찰이 무전기로 머리를 구타, 한국병원에서 10일간 입원.
  • 5월 김길자 회원 폭행헤 항의하다 회원 15명 강제연행.
  • 6월 윤성민(국방장관)국회 망언에 대한 기자회견 및 항의농성하려다 회원 30여명 연행.
  • 9월 전두환 내광시 다수 회원이 가택연금 및 3명 연행.
  • 형의 의로운 죽음(광주민중항쟁)을 왜곡보도한 KBS를 응징하다 - 류동인 올바른 역사의 쟁취를 위한 광주민중항쟁을, 공정한 보도로 국민의 눈과 귀를 밝혀야 할 언론이 왜곡보도를 서슴없이 일삼고 있었다.
    85년 KBS는 80년 5월의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몰아세우고, 군부독재 뒤에서 광주학살을 배후조종했떤 미국을 응징하기 위해 서울 미문화원을 점거했떤 사건을 왜곡보도 함으로써, 류동운 열사의 동생 류동인군(경북대)은 이에 분노, 동료 최윤영(계명대)외 1명과 함께 1985년 6월 13일 KBS대구방송국을 화염병으로 공격하였다. 이 사건으로 현존 차량방화미수 등의 죄명으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대구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 1987년 7월 8일 가석방되었다.

1986년
  • 1월노태우 내광시 회원 6명 연행.
  • 2월전두환 내광시 다수 회원 2~5일간 가택연금 및 감시, 강원도까지 연행.
  • 5월 ① 5·18 6주기 추모행사 후 금남로 등에서 회원 9명 연행.
    ② 남동성당에서 거행된 추모미사 종료 후 연좌농성하다 최루탄에 맞아 전서연양 우측 눈 실명, 김춘수씨 부상.
  • 7월 진상규명 촉구 광주우체국 앞 가두시위로 5명 연행.
  • 8월성고문 폭로 가두시위로 회원 12명 연행.
  • 9월 전두환 내광시 회원 8명 연행.
  • 10월광주교도소에서 부상자 회장 이지현씨 면회 요구하다 회원 2명 7일간 구류.
  • 11월 전 윤성민 국방장관 내광시 회원 6명 연행, 일부 회원3일간 가택 연금.
  • 우측 눈 실명 - 전서연 1986년 5월 16일 남동성당에서 가진 ‘광주민중항쟁 6주기 추모미사’를 마치고 밤 10시경 대형십자가와 태극기를 앞세운 평화적 시위에 참여, 광주학살의 진상을 규명하자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성당 앞 도로에 연좌 중, 전투경찰이 무차별 난사한 최루탄에 우측 눈을 맞아 전국 가지를 돌며 끝내 시력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에 가족들은 광주지방법원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여 1심과 2심에서 승소
    동년 5월 19일 전투경찰의 최루탄에 한쪽 눈을 실명한 전서연양의 부상에 항의하기 위해 광주경찰서를 방문한 유족회원 11명은 서장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 서장과 면담 중 70여명의 사복 전경에 의해 강제로 끌려나와 두 대의 버스에 분승된 후 시내외를 돌며 한명씩 분산 하차당했다. 11명의 유족 중에서 전서연양의 어머니 김순희씨와 유족 박순례씨는 강제로 태워진 버스 안에서 고문을 받고 실신했따. 이들은 시위자 연행용 버스에 설치된 고문의자에 양다리는 거꾸로 의자 등에 세우고 상체는 의자바닥에 눕혀졌으며 머리는 의자 밑으로 제껴져 양발과 양손을 고정시켜, 특히 차가 계속 달리는 동안 거꾸로 매달린 상태에 있던 두 사람이 길바닥에 하차되었을 때는 실신 상태였다. 지나가던 시민이 발견하고 전남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병원측에서 치료를 거부, 시내에 있는 성인병원으로 다시 옮겨 10일간 입원치료를 받았다.
1987년
  • 2월전두환 초도순시 내광시 일부회원 가택연금, 연행 납치.
    정길영씨 유인물 배포 중 연행.
  • 3월① 고 박종철군 49제 침묵시위시 정길영 회원 서부경찰서 연행.
    ② 노태우 내광시 회원 3명 연행.
  • 5월 5·18추모제 거행 후 가두시위로 21명 연행, 2명 구속됨.
  • 10월 ① 전국체전 참석차 전두환 내광시 회원 10명 연행.
    ② 민정당 청년당원 발대식 참석차 내광시 계란투척, 8명 강제연행
  • 12월노태우 집권저지투쟁에 참여, 시위 도중 8명 강제연행.
  •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 정길영1987년 2월 2일 오전10시경 초도순시차 전남도청에 들어 가려던 전두환 차량이 금남로를 지나자 유인물을 던지며 뛰어들었으나 경호원들에게 체포되어 무수히 구타당한 후, 즉심에 회부되어 20일간 구류처분을 받고 나주경찰서에 유치되었다가 정식재판 청구로 인해 10일만에 석방되었다.


  • 방화죄로 구속된 - 이천균, 김순희씨1987년 5월 18일 망월동 5·18묘역에서 거행된 광주민중항쟁 제7주기 추모제에서 전두환 화형식에 사용할 허수아비를 기관에서 탈취해가자 이에 분개한 유족들이 망월동 묘지 주차장에 세워둔 관용차량에 방화. 이 사건으로 이천균씨와 김순희씨는 주동자로 체포, 구속되어 광주교도소에서 미결수로 복역하다, 87년 6월 10일 밤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 유언비어 유포죄 - 박경순1987년 5월 19일 서울 시립대에서 거행된 광주민중항쟁 7주기 기념식에 초청 강연 도중 미국과의 관련, 학살자처단을 주장하다 유언비어 유포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청량리 경찰서에 3일간 유치되었다.

  • 구선악, 이정님87년 10월 6일 5·18부상자로 수감되었던 이지현씨를 면회하기 위해 광주교도소에 갔으나 면회를 거절하자 이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현관 대형 유리3장이 파손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구선악씨는 10월 8일부터 장성경찰서에 7일간 구류, 이정님씨는 10월 24일부터 7일간 구류처분을 받아 나주경찰서에 유치되었다.
    이외에도 광주학살의 진상을 은폐하기 위한 유가족 탄압은 폭행과 구금, 강제납치와 연금 및 격리, 생존권 침해, 생활의 철저한 사찰 및 감시 등 그 사례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지난 9년여 동안 일상적으로 자행되었다. 탄압사례는 뒷면의 투쟁일지에서 개괄적으로나마 정리하고 학살자들이 강요한 광주학살의 진상과 울분의 침묵을 넘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당한 대표적 예를 한가지만 구체적으로 기록한다.
1988년
  • 3월진상규명 촉구를 위해 상경, 청와대로 가던 중 회원 2명이 연행되어 경기도 여러 지역에 유기당함.
  • 8월광주학살 진상규명 및 5공비리 전두환일동 구속수사 촉구를 위해 40여명이 상경,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전원 경찰에 연행되어 12개 경찰서에 분산 수용됨.
  • 11월 광주학살 배후조종한 미국은 공개 사과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미문화원 앞에서 시위 중 박경순 회원이 경찰의 폭행으로 안면부등에 부상을 입음.
  • 12월광주특위활동 촉구를 위해 회원 45명이 상경, 국회의사당에 들어가 국회의장 등의 면담을 요청하다 경찰에 전원 연행되었으며 그 중 3명은 불구속 입건됨.
  • 국회의사당 방문으로 입건된 - 전계량, 주을석, 박경순씨1988년 12월 20일 5월운동협의회 산하 5개 단체는 특별법 제정 및 광주 특위 청문회 운영의 모순점에 항의하기 위해 120여명이 상경, 국회의사당에 들어가 국회의장, 광주특위 위원장 면담을 요구하던중, 이를 저지하던 전투경찰과의 충돌로 전 회원이 연행되었다. 이로 인하여 전계량, 주을석, 박경순 회원 등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국회의사당 난입 기물파손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었다.